계획의 악마랑 계약한 대가 - J의 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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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키가 작은 편에 속한다. 하지만 키 작은 것이 불리하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식량 위기가 온다면 나는 똑같이 먹어도 오래 버틸 수 있을 거다. 전쟁이 나면 총 맞을 확률이 조금이라도 줄어들 거고. 그리고 대학교 다닐 때 춤 동아리를 한 적이 있었는데, 활동하면서 깨달은 사실이 키가 작을수록 몸을 잘 움직인다는 것이었다. 키가 클수록 멋있을 수 있는 포텐셜이 높지만, 몸을 허우적댈 확률이 높았다. 특히나 키가 클수록 팔다리 끝 제어가 잘 안 되더라.

​물론 앞 내용은 농담이다. 키를 선택할 수 있다면 난 키 큰 사람이 되고 싶다. 왜냐면 공연이 끝나고 정작 번호 따이는 사람은 춤을 잘 췄던 사람보단 키가 컸던 사람이었으니까. 하고 싶었던 말은 좋아 보이는 특징은 어떤 면에서 단점이고, 안 좋아 보이는 특징은 어떤 면에선 장점이 된다는 것이다. 모든 디자인(설계)은 트레이드 오프를 가지고 있다.

요즘 MBTI에서도 특징별로 우열을 나누는 것 같다. 예컨대, T는 로봇 같은 공대생의 느낌이라면 F는 감성적이고 인간적이라서 F가 더 우월하다는 것이다. T발놈이라는 표현도 있다. 또, 즉흥적인 P보다는 계획적인 J가 일잘러라는 것이다. 그래서 P보다는 J가 우월하다는 인식이 있다. 그래서 P들은 J가 되고 싶다고 한다. 물론 농담일 거다. MBTI에 너무 과몰입하진 말자.

여기서 할 얘기는 J의 특징으로 불리는 계획 능력이다. 아마도 이 글을 읽는 사람이라면 J성향이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왜냐면 이런 글들은 J가 좋아할 것 같기에. 계획 수립 능력이 뛰어날수록 현대 사회에서 일잘러로 인식될 확률도 높다. 사실 맞는 말이긴 하다. 전략을 짜고 계획을 수립하는 건 강력한 능력이니까. 어디서 봤는데 세계급 CEO들의 MBTI가 거진 J더라.

그런데 앞서 말했듯, 모든 것에는 트레이드 오프가 있다. 계획 능력을 받은 대가로 치른 것이 있다. 그것은 불안이다. 계획은 미래를 설계하는 일이다. 미래를 생각하는 뇌의 회로는 신기하게도 불안과 걱정을 하는 회로와 비슷하다고 한다.1 어쩌면 이 때문에 고학력자들의 정신병 발병률이 높은 것일 수도 있겠다.

운동선수가 각종 신체 후유증에 신경 써야 하듯이, 지식 노동자도 정신 건강에 신경 써야 한다. 특히나 고학력이고 머리 복잡한 일을 할수록 더욱. 정신 건강을 위한 행동으로는 유산소 운동과 명상이 대표적으로 꼽힌다. 특히나 계획 능력은 미래를 생각하는 능력이니 의식을 현재로 가지고 오게 하는 명상이 효과적일 거다.

나는 2018년부터 간헐적으로 명상했다. 2018년에는 마음 챙김 명상이 뇌 피로를 줄여준다는 내러티브로 유행했었다. 그때 Headspace나 Calm도 써보고 이것저것 해봤다. 근데 뇌 피로가 줄어드는 효과는 보지 못했다.

5년이 지난 최근 들어서야 명상의 효과를 알 수 있었다. 명상은 뇌 피로를 줄여주기보다는 현재를 알아차리는 습관을 길러준다. 적어도 나한테는 이런 효과였다. 내가 무리하고 있을 때 내 몸 상태를 파악할 수 있게 해주고, 내 감정을 더 잘 알아차릴 수 있게 해주고, 미래 생각으로 걱정이 들고 불안할 때 현재로 돌아와서 안심할 수 있게 해준다.

최근에 성공적으로 도입한 습관은 누웠을 때 명상을 하는 거다. 이건 정말 좋은 습관이다. 누웠을 때 명상을 하면 잠이 들 수도 있다. 명상을 하건, 잠이 들건 어찌 되었건 나는 무조건 이득을 보는 거다. 지지 않는 게임을 하는 거라 볼 수 있다.

MBTI로 얘기를 했지만 이 이야기는 Big 5에서 높은 성실성의 단점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Footnotes

  1. 이 부분이 더 알고 싶다면 우울할 땐 뇌과학 책을 참고해보자. 인사이드 아웃 2의 불안이도 이를 바탕으로 설계된 걸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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