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력의 핵심은 글쓰기다. "내 생각은 역시 옳았어"라면서 정신 승리할 게 아닌 이상, 생각을 표현하고 쓴 글로 생각을 발전시킬 수 있어야 한다. 이처럼 글쓰기의 중요성은 누구나 알고 관심도 많다.
글쓰기 실력은 어떻게 기를 수 있을까? 결국 많이 읽고 쓰고 생각하는 것이 핵심 아닐까? 이는 다독·다작·다상량이라는 말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이 중 다독, 많이 읽기는 사람들이 많이 단련해 온 능력이다. 독서의 중요성은 어릴 때부터 강조돼 와서 반강제로 연습했을 거다. 입시에서 중요했기 때문이기도 하고. 독서법은 여전히 자기 계발에서 인기 있는 주제고, 일 년에 책을 100권 넘게 읽었다는 건 자랑거리 중 하나다. 다독은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해낼 수 있다.

문제는 다작과 다상량이다. 많이 쓰고 생각하는 데에는 유명한 방법론도 훈련법도 없다. 일 년에 책 100권 읽기처럼 수치화하기도 어려워서 내가 잘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그래서 다작과 다상량을 위한 프레임워크가 뭐가 있을까 생각해봤다. 많이 쓰고 생각하겠다는 건, 때를 가리지 않고 생각하고 글을 쓰겠다는 거다. 그러면 깨어 있는 내내 떠오르는 생각을 글로 적어야 한다. 우린 그걸 보통 메모라고 부른다.
즉, 다작과 다상량을 위한 프레임워크는 메모와 연관된 프레임워크일 거다. 단순히 메모만 적고 끝이 아니라 이를 구체화하고 생각끼리 연결하는 과정도 필요하다. 그래야 생각이 발전하고 인사이트도 발견할 테니까. 그러다 보니 결국 오늘 소개할 제텔카스텐으로 이어지더라.
평소에 내 생각과 다른 사람의 생각을 메모하고 이를 연결해, Bottom-up으로 글감을 모아 나간 뒤 나중에 주제를 발견해 글을 쓰는 방식이다. 학교에서 가르친 주제 선정 후 개요·문단·문장 순으로 써 나가는 Top-down 방식과는 다르다.
제텔카스텐하면 뭐가 좋아질까?
첫 번째로 글쓰기 부담을 줄여준다. 우리는 보통 글을 쓸 때 Top-down 식으로 주제를 잡고 개요를 짜고 문단을 구성하고 문장을 작성한다. 문제는 이런 식으로 글을 쓰면 글이 안 써질 때가 많다는 거다. 글을 쓰려는데 아이디어가 안 떠오르기 때문이다. 주제를 잡는 것부터 골치고, 개요를 구성하기도 어렵고, 주제를 뒷받침하는 문단을 생각하기도 까다롭다.
제텔카스텐은 바텀업으로 글감을 모아간다. 충분한 인사이트와 글감이 모이면 그때 주제를 정하기에, 글쓰기를 시작할 때의 부담이 줄어든다. 글쓰기에 따르는 절대적인 고통이 있다면 이를 나눠 받는 셈이다. 또 글감과 문단이 이미 어느 정도 모인 상태라, 글을 쓸 때도 있는 것을 조립해 가며 부족한 부분을 채우고 수정하는 식이다. 백지에서 시작할 때보다 부담이 확실히 줄어든다.
두 번째로 제텔카스텐을 사용하는 것 자체가 좋은 글쓰기 훈련이 된다. 제텔카스텐은 노트를 바탕으로 많은 글쓰기를 요구한다. 좋은 글쓰기에는 다작이 중요한데, 제텔카스텐을 쓴다는 것 자체가 다작하고 있다는 뜻이다. 노트를 꽤 많이 쓰게 되거든.
마지막으로 제텔카스텐은 재밌다. 부담 없이 노트를 써 내려가는 과정이 재밌다. 노트를 연결하는 과정도 재밌고. 연결하면서 예상치 못한 인사이트를 발견하는 세렌디피티가 기분을 좋게 만든다. 게다가 요즘은 AI로 유사한 노트끼리 연결할 수도 있으니 놀랍기도 하다. 퇴근하고 맥주 마시며 노트를 쓰고 연결하는 일은 정말 즐겁다.
노트의 종류
제텔카스텐에는 세 가지 노트가 있다. 내 생각을 빠르게 적어놓는 임시 노트, 다른 사람의 생각을 적어놓는 참고 노트, 그리고 완결성 있게 생각을 적어 나중에 글쓰기에 활용하는 영구 노트다.
임시 노트

임시 노트는 평소 생활하면서 떠오르는 생각을 즉시 적는 노트다. 깔끔히 적을 필요는 없고 나중에 무슨 내용이었는지만 생각날 정도로 적으면 된다. 영구 노트로 만들기 전 잠깐 저장해 두는 용도다. 임시 노트는 즉시성이 중요하다. 생각이 떠올랐는데 그걸 적으려고 컴퓨터를 켜고 앉아야 한다면, 그 사이에 생각이 날아가 버릴 수 있으니까. Apple Notes, Google Keep처럼 임시 노트 적기에 탁월한 앱을 쓰거나 아날로그 메모를 써도 좋다. 카카오톡 "나에게 보내기"도 훌륭한 임시 메모 공간이다. 임시 노트는 나중에 영구 노트가 되거나 버려진다.
참고 노트
참고 노트는 책, 유튜브 등 다른 사람의 생각을 접하다가 영감을 주는 부분을 모은 노트다. 복붙해서 그대로 적기보다는 웬만하면 내 말로 풀어 적는 편이 기억에 잘 남아 좋다. 그렇다고 빡세게 적을 필요는 없고, 내용을 간략히 요약해 적으면 된다. 물론 출처도 꼭 표기하고.
영구 노트
영구 노트는 생각을 완결성 있게 적어 나중에 글쓰기에 활용할 수 있는 노트다. 임시 노트·참고 노트·영구 노트를 보면서 내 생각이나 관심사와 연관 있는 것을 골라, 누가 봐도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완결성 있게 적어두면 된다. 하나의 영구 노트에는 한 가지 생각만 기록해야 한다. 그래야 생각이 노트마다 분리되어, 노트를 연결해 인사이트를 발견할 수 있게 된다.
완결성 있게 생각을 적었다면, 이것이 기존 참고 노트나 영구 노트 중 어떤 것과 연결될 수 있는지 생각해본다. 연결을 시도하는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연결로 새로운 인사이트를 발견할 수 있다. 창의적 사고를 인위적으로 따라 한 셈이다. 스티브 잡스의 Connecting dots가 떠오른다. 또 연결해 두면 나중에 글을 쓸 때 연관된 노트를 한꺼번에 가져오기도 편하다. 이런 노트 연결 작업은 아날로그 시대에는 큰 문제였지만 디지털 시대에는 링크가 있어 어렵지 않다. 옵시디언같이 노트 간 연결에 특화된 앱도 있고.
연결 방법은 (1) 기억을 더듬어 연결하거나 (2) 그래프나 인덱스를 통해 노트를 찾아 연결하거나 (3) QMD와 같은 시맨틱 검색으로 의미가 유사한 노트를 찾아 연결하는 방법이 있다.
또한 "연결" 덕에 영구 노트에는 허브 노트가 등장한다. 허브 노트는 여러 노트를 연결한 노트다. 주로 현재 파고 있는 주제의 키워드가 된다. 제텔카스텐을 파고 있다면 "제텔카스텐" 노트가 허브 노트가 될 거다. 그리고 허브 노트 중 "지금 당장" 관심 있는 노트가 엔트리 포인트가 된다. 이 엔트리 포인트는 노트 "읽기" 과정의 진입점으로 쓰인다.

제텔카스텐 프로세스
제텔카스텐은 단순히 피상적으로 옵시디언 같은 앱으로 노트를 연결하는 개념이 아니다. 아웃풋을 내기 위한 글쓰기용 Bottom-up 프레임워크다. 아이디어 생성부터 최종 글쓰기까지 이어지는 프로세스를 설명해보겠다.
1. 임시 노트 만들기
평소 생활하다가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빠르게 적어 임시 노트로 만들어 둔다. Google Keep 같은 앱을 추천한다. 홈 화면에 위젯으로 등록해 두면 언제든 빠르게 생각을 적을 수 있다.
2. 참고 노트 만들기
읽고 보고 듣는 자료 중 영감을 주는 아이디어가 있다면, 그 아이디어를 내 글로 풀어 참고 노트로 적어 둔다. 출처를 표기해 참고 노트 보관함에 넣어 둔다. 기존에 쓰던 독서 노트나 유튜브 요약 노트가 바로 참고 노트가 된다.
3. 영구 노트 만들기
영구 노트는 임시 노트·참고 노트, 또는 기존 영구 노트를 보면서 작성한다. 나중에 글을 쓸 때 쓸 문단을 만든다는 느낌으로 쓰면 된다.
3-1. 임시 노트를 보면서 영구 노트 작성하기
임시 노트는 시도 때도 없이 만들어지는 노트라, 주기적으로 확인해 영구 노트로 옮기고 임시 노트는 모두 삭제하는 게 좋다. 나는 이틀에 한 번씩 Google Keep과 Apple Notes를 켜서 싹 비우며 영구 노트로 옮기는 작업을 한다.
3-2. 참고 노트를 보면서 영구 노트 작성하기
참고 노트를 보다가 내 생각이 떠오르면 영구 노트로 만들어 둔다. 그리고 그 영구 노트에는 참고 노트와 연결도 걸어 둔다. 아이디어 출처를 표기하기 위해서다. 이 작업은 주기적으로 하지는 않고, 한 주제를 깊게 파면서 자료를 많이 볼 때 한다.
3-3. 영구 노트를 보면서 영구 노트 작성하기
지금 관심 있는 주제인 엔트리 포인트를 기준으로 영구 노트를 보면서 새 영구 노트를 쓴다. 시간이 지나 다시 보면 또 다른 아이디어가 떠오르거나 다른 연결성이 보일 거다. 영구 노트라고 해서 기존 영구 노트를 못 고치는 건 아니다. 추가할 내용이 있으면 추가한다.
4. 충분한 개수가 모였다면 아웃풋을 내기
앞서 말했듯이 제텔카스텐은 아웃풋을 위한 프레임워크다. 계속 노트만 쓰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노트가 충분히 모였다면 나만의 독특한 인사이트가 생기고, 주제가 잡히고, 그 주제에 알맞은 문단이 모였을 거다. 이를 얼기설기 엮어 글쓰기를 시작하면 된다.
제텔카스텐 사용 시 유의 사항
제텔카스텐의 프로세스 자체는 굉장히 심플하다. 하지만 쓰면서 굉장히 혼란스러울 수 있다. 그래서 제텔카스텐 방법론에는 여러 말이 많다. 여기서는 내가 생각하는, 제텔카스텐을 쓰면서 알아둬야 할 점을 짚어보겠다.
제텔카스텐은 기존 탑다운 글쓰기보다는 비효율적이다
제텔카스텐과 같은 Bottom-up 방식은 잘 설계된 Top-down 방식보다 비효율적일 수 있다. 목표와 수행 방법이 명확한 Top-down은 재빠르게 원하는 결과를 낸다. 예컨대 책 리뷰로 1일 1블로그 챌린지를 하기에 제텔카스텐은 그리 적합하지 않다. 제텔카스텐이 글쓰기 부담을 줄여주는 건 맞지만, 당장 내일 끝내야 하는 과제나 업무 글쓰기 효율을 높여주지는 않는다. 장기적으로 나만의 인사이트가 담긴 글을 써 내려갈 때 효과적이다. 그때는 Bottom-up으로 많은 노트를 모아두는 게 좋으니까.
재미없으면 하지 마라
제텔카스텐은 힘들여 하면 안 된다. 프로세스 자체에 당장 성취해야 할 목적이 없으니까. 그래서 몰입하게 만드는 동기가 주로 "재미"다. 내 생각을 구체화하고 연결하는 과정은 재밌다. 그런데 이게 "1일 5노트 작성하기" 같은 의무가 되는 순간 재미가 사라지고 몰입도 사라져, 결국 제텔카스텐을 유지할 수 없게 된다. 빡세게 할 필요 없이 재미를 느끼며 꾸준히 하면 된다. 나만의 인사이트와 글을 찾아가는 과정을 즐기자.
당신이 정답이다
제텔카스텐 방법론은 사람마다 제각기 다르다. 인터넷에서도 네가 맞다느니 내가 맞다느니 하는 글이 많다. 제텔카스텐을 설명하는 콘텐츠도 제각기 조금씩 다르다. 이 글만 해도 다를 거고. 제텔카스텐도 GTD처럼 프레임워크라 개인화가 가능하다. 규격화된 방법에 억지로 끼워 맞추기보다는, 자신에게 알맞은 방법을 찾거나 방법론을 조금씩 비틀어 적용하면 된다.
- 참고 노트 작성이 너무 빡센 것 같다? → 대충 해도 된다. 모든 책을 할 필요도 없고.
- 영구 노트 작성에 룰이 있어야 할 것 같다. 최소한 2개의 링크는 붙이자 → 그래도 된다. 그럴 리소스가 있다면.
- 프레임워크는 각자 취향과 목적에 맞게 변형해 쓰면 된다. 중요한 건 Bottom-up으로 노트를 모아가며 글로 발전하는 큰 흐름을 이해하는 것. 알맞은 방법을 찾아가면 다작과 다상량을 위한 강력한 프레임워크가 될 거다.
Furthermore
다음은 읽을 만한 자료다.
숀케 아렌스의 제텔카스텐 말이 필요 없는 책. 한 번만 읽으면 안 되고 시간 간격을 두며 여러 번 읽어야 한다. 실천하기 어렵다고 비판받지만 핵심 원리를 알려면 꼭 읽어야 한다.데이비드 카다비의 디지털 제텔카스텐
옵시디언에서 제텔카스텐 사용법을 보고 싶다면 내 책인
세컨드 브레인은 옵시디언안티넷 제텔카스텐은 어떤가?
- -> 안 읽어봤다. 물론 읽어서 얻을 건 있겠지만 나는 추천하지 않는다. 저자 마인드셋이 별로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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