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머리가 드러나는 순간 - 정리 (Organiz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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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를 수집했으면, 적절히 가공해서 쓸 수 있게 알맞은 곳에 배치해야 한다. 즉, 정리 단계다.

사람마다 일머리를 어떤 능력으로 보는지 생각이 다를 거다. 내 경우, 정리가 빠르고 정확하게 되느냐로 본다. 일을 못하는 사람은 무슨 말을 해도 이게 자기한테 필요한 정보인지 버릴 것인지, 혹은 어떻게 필요한지 구분이 잘 되지 않는다. 그렇게 구분을 못 하니 모든 게 중요하게 느껴질 수도 있고. 내용을 소화하느라 버거울 수 있다.

예체능 분야는 정리 능력이 그리 필요하지 않을 것 같다. 그러나 지식 노동자는 다르다. 직장에서 저연차 때는 주어진 실무만 처리해도 문제없겠지만, 고연차로 갈수록 여러 문맥과 정보가 들어오게 된다. 자영업이나 사업을 하면 신경 쓸 건 더욱 많아질 거고. 관리직으로 올라갈수록 부족한 정리 능력이 발목을 잡는다. 무슨 말을 하면 이해를 못 하고 의사결정을 못 하는 상사나 사장이 되고 싶은 사람은 없을 거다. 이렇듯, 정리는 굉장히 중요한 능력이다.

정리는 센스의 영역으로 보인다. 사실 사람들이 정리 능력을 기를 생각을 못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리는 숙달이 가능한 능력이다. 정리에 관한 몇 가지 원칙을 얘기해보겠다. 이 원칙들은 방 정리부터 정보 관리 심지어 소프트웨어 아키텍처까지 적용 가능한 근본 원칙이다. 많은 부분을 대니얼 J. 레비틴의 정리하는 뇌에서 참고했다.

정리 안 하는 것이 잘못 정리하는 것보다 낫다

엄마가 내 방을 정리하면 방은 깨끗해졌는데, 물건을 못 찾는다. 엄마 기준에서는 깔끔하게 물건을 종류별로 정리했을 거다. 반면 나는 자주 쓰는 것을 근접하게 뒀을 거고. 자주 보는 책과 사용하는 도구가 책상에 있을 거다. 이렇듯 '정리 기준의 괴리'로 물건을 못 찾게 된다. 이와 같이, 잘못된 정리는 안 한 것보다 못하다. 차라리 안 했을 때엔 물건이 자연스럽게 배치가 되었을 텐데 말이다.

괜히 정리 기준을 새로 만들기보다는, 기준이 존재한다면 그것을 활용하는 게 좋다. 카테고리를 쉽게 추가하지 말라는 거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쪼갤까 말까 할 때는 쪼개지 마라 다. 이를 정보나 자료 관리에 적용해보면 특별한 이유 없이 폴더를 생성하지 말라는 거다. 처음 노트 앱을 사용할 때는 이것저것 주제별로 폴더를 만든다. 그러면서 노트가 하나도 없거나 몇 개 없는 폴더도 만들어지게 된다. 결국 금방 못 사용하게 된다. 괜히 번잡한 폴더만 생기는 거다.

개발자 대상으로 말하자면, 쉽게 쪼개지 말라는 원칙은 소프트웨어 아키텍처에도 적용할 수 있다. 뭣도 모르고 서비스를 분리하는 것보다 명확한 기준이 있을 때 분리하는 거다. 잘못된 MSA 도입은 서비스 간 고려해야 할 인터페이스만 늘어나서 설계와 관리 비용이 늘어난다. 코로나 시기 이력서 주도 개발로 섣부르게 MSA가 도입된 기업이 많을 거다. 이를 교통정리하느라 고생한 사람들도 있을 거고. (성장이란 이름의 본심 - 프로젝트화 능력)

이렇듯 카테고리를 쉽게 추가하지 말라는 것은 모든 분류에 사용할 만한 원칙이다. 과하고 잘못된 정리는 독이다. 특별한 목적이 있거나 필요할 때만 분류하면 된다. 괜히 묘수 써서 섣부르게 쪼갤 필요 없다.

사용할 수 없으면 갖고 있지 마라

곤도 마리에는 일본의 유명한 정리 컨설턴트다. "설레지 않으면 버려라"라는 말로 유명하다. 내가 영향력을 가할 수 있는 것만 들고 있는 것이 중요하다. 생산성뿐만 아니라 삶이 그런 것 같다. 100년 후 지구가 멸망한다는 얘기가 들려봤자,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극단적인 예시였지만, 많은 정보가 이런 '지구 멸망 소문'과 같다.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다. 그렇기 때문에 나심 탈레브가 뉴스를 보지 말라고 한 것 같다. 노이즈니까. (아예 시사에 무관심하라는 얘기가 아니다.)

사용할 수 없다면 갖고 있지 마라는 다들 알 법한 원칙이니 조금 다른 주제로 틀어 얘기해보겠다.

내 잘못된 선입견이지만 직장에서 정치적 발언을 많이 하거나 잡학이 뛰어난 사람들 중 역량 좋은 사람을 못 봤다. (반례는 당연히 있을 거다) 사람 역량의 합은 애초에 다 고만고만하다. 어떤 것에 투자하면 다른 것에서 손해가 있다. 자기에게 쓸모 있는 정보만 받아들이기도 바쁠 텐데, 자신이 바꿀 수도 없는 정치나 쓸모없는 잡학에 집중하면 그만큼 손해니까. 정치가 삶과 연관 없다는 얘기가 아니다. 밀접하다. 하지만 행동을 취할 수 있느냐는 다른 얘기다. 스케일만 다를 뿐이지, 방금 전의 지구 멸망 예시랑 같다.

수집된 정보가 내게 어떻게 필요한지 빠르게 파악해야 한다. 그리고 필요 없다면 바로 버리고. 필요 없는 정보만 들어오는 소스라면 그 소스를 버리면 된다. 그렇기에 쓸데없는 커뮤니티나 SNS... 모두 지우는 거다. 공부도 내가 쓸 수 있는 것에 투자해야지, FOMO 때문에 이것저것 파고 있으면 안 된다. 쓰일 만한 정보 습득에 집중해야 한다.

"나는 쓸모없는 정보 습득을 못 버리겠다. 너무 즐겁다."라면 그걸 쓸모 있게 바꾸면 된다. 직장에서 정치적 발언을 하는 사람들은 당원 활동이라도 했으면 좋겠다. 본인이 정치에 대한 생각이 뚜렷하고 관심도 높다면 당연히 세상에 영향력을 행사해야 하지 않겠는가?

일을 해치우는 관점에서는 '행동' 기준의 정리가 중요하다

일을 해치우는 건 실행을 한다는 거다. 실행을 위해서는 정보, 자료, 일감이 행동을 기준으로 정리되어 있어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GTD와 PARA는 유용한 도구이고 서로 궁합이 잘 맞는다. GTD에서 중요하게 가르치는 마인드가 "다음 행동이 무엇인가?"를 묻는 것이고, PARA에서는 행동 기준으로 정보를 분류한다. GTD와 PARA는 "일감"과 "정보"를 행동 기준으로 분류하는 쓸 만한 기준을 제시한다.

나는 한국에서 아마 가장 정신없을 모빌리티 회사를 다니고 있다. 개발자로 근무하는데, 최근에 팀이 합쳐져서 너무 바쁘다. 사용하는 언어도 몇 가지 되고 프론트, 백엔드, 인프라 모두 다 봐야 한다. 신경 써야 할 서비스도 많고 상황 변화도 빈번하다. 거기에 책 집필, 메일레터, 강연까지 겹치니 돌겠다. 최근엔 다녀야 할 병원도 많았다. (이래서 요즘 유튜브에 영상을 못 올린다)

이렇게 다양한 일과 정보가 미친 듯이 들어오는 상황에서 빛을 발하는 건 주어진 일과 정보가 나에게 어떻게 필요하냐는 거다. 무언가 수집되는 즉시 이게 프로젝트랑 연관되어 있는지 (Project), 책임지고 있는 서비스 관련인지 (Area), 염두에 둬야 할 정보인지(Resource), 일감이라면 어떻게 쪼갤 것이며 다음 행동은 무엇일지 판단하는 게 곧바로 튀어나와야 한다. 진정한 생산성 방법론은 극한으로 바쁠 때 빛을 발한다. 내가 책임 없이 빈말로 GTD와 PARA를 강조하는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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