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처음으로 책을 집필하게 되었다
![[1to1.png|책을 쓴 사람은 안다. 표지 디자인이 나올때 얼마나 기쁜지|300]]
처음으로 책을 집필하게 되었다. 원고의 글자수를 확인하니 13만자 정도된다. 실용서일지라도 한 주제로 장문의 글을 썼다는 뿌듯함도 생긴다. 책을 집필하면서 다양한 일들이 있었으니 후기를 써볼 수 밖에.
## 출간 제의가 오다: 23년 10월 10일
처음으로 책을 집필하고 출간하게 되었다. [골든래빗](https://goldenrabbit.co.kr/)이라는 개발 서적 전문 출판사에서 출간 제의 메일이 왔다. 고민을 했다. 책 쓰는거 시간 장난아니게 걸릴텐데....
며칠을 고민한 결과 집필을 하기로 했다. 아직은 **한국에 제대로 된 옵시디언 책이 없다는 점**이 주요 동기로 작용했다. 그리고 출판사에서 딱 시기에 요즘 우아한 개발 책을 낸 것을 봤다. 수상한 출판사는 아니겠단 생각이었다. 이것은 기회다.
![[9791191905458.jpg|나도... 배민이 책 낸 출판사에 책 쓸거야!|300]]
그래서 출간 메일에 답장을 보낸다.
- ["] *저희 언제 만나볼까요?*
## 순조로운 초반 작성
출판사를 방문하여 미팅 후 샘플원고[^샘플원고]를 작성하기로 했다. 책은 옵시디언의 기능 설명에만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PARA나 제텔카스텐 등의 내용도 넣겠다고 했다. 그래야 경쟁력이 생길 것 같아서다.
샘플 원고는 옵시디언 설치, 마크다운, PARA와 제텔카스텐 설명 정도로만 30페이지만 작성하기로 했다. **PARA나 제텔카스텐 관련 파트는 기존에 충분한 메모가 있었기에 금방 작성**할 수 있었다. 그리고 옵시디언 기능 설명 부분도 금방 작성하였다. 나는 스크린샷이 분량을 순식간에 늘릴 수 있는 좋은 도구라는 것을 이 때 깨달았다. [^스크린샷]
![[2024-06-01 at 10.12.10Z@2x 1.png|집필 협업의 시작은 샘플원고]]
[^샘플원고]: 샘플원고는 30페이지 가량 미리 원고를 작성해보는 것으로 연습이자, 출판사가 계약전에 '이 사람 믿고 협업해도 되는건가?'를 검증하는 과정이다. 약 30페이지 가량 작성하면 된다.
[^스크린샷]: 뒤늦게 안거지만 맥에서는 CleanShot X를 쓸 걸 그랬다.
## 실용서지만 실용서가 아닌 느낌의 책
이 책은 옵시디언 책이지만, `할 수 있다! 하루만에 끝내는 옵시디언 사용법!` 같은 완전 실용서 느낌의 책은 아니었다. 옵시디언이 어렵다고 하지만 그래봤자 노트 앱인데 뭐 얼마나 어렵겠는가? 또 기능만 설명하는 것은 좀 진부하다 생각하기에 한 번 정도는 "어떻게 노트를 작성하는게 좋을까?"를 섞어보고 싶었다. 기존 노션 설명 책들은 책의 많은 분량이 쓸모없는 부분에 할애하거나 템플릿에 집중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마냥 책의 내용을 이론적이고 어렵게 할 수는 없었다. 그런 사람들은 애초에 인터넷 보고 필요한 것을 다 배운다. 책을 살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렇기에 내용을 적절히 타협했다.
Part 1, 2에서는 옵시디언 기능 위주로 설명을 하고 Part 3에서는 PARA와 [[제텔카스텐 - 다작과 다상량을 위한 프레임워크|제텔카스텐]] 설명을 했다. 그렇기에 내가 가장 관심가지며 집필한 부분은 Part 3다. Part 4에서는 다시 옵시디언으로 돌아와 HTML, CSS, 데이터뷰 어려운 내용은 잔뜩 넣었다. **즉, 초심자부터 숙련자까지 고루 타게팅하게 내용을 구성**했다.
![[Pasted image 20240601165210.png|가장 많은 애정을 Part 3에 쏟았다. 사실 옵시디언 기능보다 관심 있는 것은 여기|400]]
마케팅에서 타겟을 명확히 하라고 애매하게 짬뽕하는 것을 피하라고 가르치는거 나도 안다. 그러나 옵시디언 한해서는 이럴 수밖에 없었다. 애초에 옵시디언 자체가 니치하기에 다루는 내용까지 니치하면 안 된다. 포괄적이어야 한다. 쉬운 내용도 확보해야하고 어려운 내용도 확보해야 후발 경쟁 도서에게 허들이 생긴다. 단순히 기능 설명의 퀄리티가 아닌 경험의 허들까지 요구하기 위해서다.
## Writer's Block
처음엔 진도가 팍팍 나가졌지만 어느 시점이 되니 막힌다. 책 쓰기의 공세 종말점에 도달한 느낌이다. 계속 머릿 속에 옵시디언 내용이 돌아야 하는데 머릿 속에 돌아가지 않는다. 생각하기 싫어진다.
이게 사실 책 뿐만 아니라 다른 작업에도 동일한 문제가 발생했다. 졸음이 도지기 시작해서 어떤 것도 하기 싫어진 것이다. 결국 진행 중이었던 메일레터는 중단할 수 밖에 없었다.
정신과도 열심히 다녀 콘서타도 먹고 가정의학과도 가보고 정신가도 바꿔보고 거기서는 수면 클리닉을 가보라해서 수면 다원 검사와 다중 입면기 검사를 받고 최종적으로는 기면증[^기면증] 진단을 받았다. 이 한 문장 안에는 정말 갖가지 시도와 비용 지출이 있었다. 기면증 진단 받았더라도 맞는 약과 용량 찾는 최적화 과정도 필요하다.
![[2024-06-01 at
[email protected]|Narcolepsy|300]]
글쓰다 막혔을 때는 글을 발전시킬 수 있는 아이디어와 씨앗 문장이 필요하다. 이것은 고민해서 얻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고 즐거운 기분이 중요하다. 돌담을 쌓기 위해 들판으로 나가 자연석을 주섬주섬 모으듯이 메모를 모아놔야 한다.
그러나 옵시디언 기능을 설명하는 부분은 그런 자연석을 모아두진 않았다. 옵시디언 기능과 관련된 메모가 없었기에 결국 밑바닥에서 새로 작성할 수 밖에 없었다. 몇 가지 기능은 사실 내가 별로 안 쓰는데도 어쩔 수 없이 내용 구성을 완전히 하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쓰고, 설명할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억지로 써 본 일부 기능은 내 생각보다 지속할만한 기능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책을 쓰면서 더 배우게 되는 것이다.**
의욕이 떨어졌을 때 다시 돌이켜볼 건 내가 이 책을 왜 쓰게 되었는가다. 나는 이 책을 "정말 누군가에게 필요한 책이다" 라 생각해서 집필하게 되었다. 이렇게 동기부여를 스스로 하며 갈 수 밖에 없다. 참고로 집필 동기에는 돈은 없다. 돈에 관심이 없어서가 아니라 후에 말하겠지만 ==책은 돈이 안 된다==
[^기면증]: 잠이 많아지는 병이라 생각하시면 됩니다. 그렇다고 영화처럼 갑자기 픽픽 쓰러져 잠드는 것은 아닙니다. 기면증 의심시 선릉 코슬립 수면 클리닉 추천. 대한민국에서 수면으로는 여기가 가장 훌륭한듯 합니다.
## 용어
PARA와 제텔카스텐을 설명하는 Part 3는 배운다는 느낌을 갖게 하는 것이 목적이다. 그렇기에 AI 설명까지 하면서 노트 유사도를 비교하는 내용까지 들어간다. 노트 내용을 임베딩 모델에 넣어 나온 벡터를 코사인 유사도로 분석하는 것이다. 공대 나온 사람들이야 이렇게 설명하면 거진 이해한다. 그런데 이걸 실용서에서 설명하려는 순간 난감해진다.
임베딩 모델이야 둘째치고 `벡터`부터 설명할 필요성이 생긴다. 벡터가 고교과정에 빠졌기 때문이다. 고교과정에 있다면 설명 안 하고 스리슬쩍 너머갈 수 있겠는데 빠졌으니 설명을 해야한다. 벡터를 크기와 방향이 있는 것이라 설명할 수는 없다. 책의 예제에서 사용하는 임베딩 모델을 통과하면 3192 차원의 벡터가 나오는데 3192 차원의 벡터를 크기와 힘으로 설명할 순 없다. 그래서 벡터를 설명한 방식은
> 벡터는... 숫자의 나열입니다!
>
>
> "그러면 수열과의 차이점은 무엇인가요?"
> "몰라 시안이는 그런거. 벡터는 숫자의 나열로 할래."
**용어는 정의를 지키느라 어려워서도 안 되고 틀려서도 안 된다.** 편집자와 함께 퇴고 중에 'HTML과 CSS는 `프로그래밍 지식`이다' 라는 내용이 있어 `개발 지식`으로 수정했다. 개인적으로 개발 지식이 없거나 관심 없는 사람에게는 차라리 HTML과 CSS는 프로그래밍 언어다라고 설명하는 편이 낫다고 생각한다. 마크업 언어니, 스타일시트 언어니 하는 순간 오히려 더 혼란스럽다. 그러나 HTML과 CSS가 프로그래밍 언어야? 하면서 별점테러 할 사람이 있을까봐 수정했다.
## 그리고 지식의 저주
쉽게 설명하는 것은 나의 역량보다는 편집자의 역량에 달렸다. 왜냐면 나는 지식의 저주에 걸린 상태기에 어떤 용어와 설명이 어려운지 잘 모른다. 이는 편집자가 잘 챙겨줘야하며, 담당해주신 편집자 분은 훌륭히 잘해주셨다.
또한 내용 구성에도 적극 피드백을 주셨다. 나는 책의 구성을 주제별로 생각해서, 노트의 조회와 관련된 건 한 곳으로 모았다. 즉, 검색, 그래프뷰, 데이터뷰 등은 하나의 챕터에서 소개 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편집자는 HTML, CSS, 데이터뷰 등 어려운 부분은 맨 마지막 Part 4로 빼자는 제안을 했고 그 판단은 옳았다고 본다.
출판사의 도움은 이것뿐만 아니다. 조판 과정을 거치면 전혀 다른 책이 되어버린다. 이걸 내가 쓴게 맞다고? 내가 아니라 출판사가 작성한 책 같다. 흠.... 출판사가 캐리한 책같군. 그런데 원고가 제대로 들어오는 경우가 드물다하니 조금의 자찬을 해본다 (?)
![[2024-06-01 at
[email protected]|이런 귀여운 그림을 내가 그릴 순 없다|400]]
![[2024-06-01 at
[email protected]|구글 독스에서 작성한 원고는 '조판'을 통해 실제 책 디자인으로 입혀진다.이 변화의 감격은 글쓴이만 느껴볼 수 있다.]]
## 원고 작성 후에도 끝나지 않는 것
책을 출판하는 것은 단순히 개인의 자기 계발로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하고 끝낼 수 없는 문제다. 나랑 전혀 관계없던 사람들이랑 수익 창출이라는 목적을 향해 달려간다. 내가 시장성 신경 안 쓰고 말하고 싶은 내용으로 고집부리면 나야 좋은 경험으로 남지 출판사는 적자로 남는다.
그렇기에 **출판 후에는 반드시 영업이 필요하다**. 나같은 개발자에겐 어려운 부분이다. 철면피 깔고 책을 냈다고 알려야하고 누군가에겐 *책팔이다. 돈 냄새난다. 초심 잃었다* 들으면서 등을 돌려질 각오는 해야한다. 영업 할 각오했다고 끝나는 문제가 아니다. 이런 전단지 돌리는 작업도 철면피 깔고 들이대기 시작하면 반감만 가진다. 적절하게 들이대는 방법이 필요하다.
책, 강의팔이가 욕먹는 이유는 너무 팔려는 느낌이 나서다. **욕망은 그 상품을 만든 동기이자 목적일 수 있지만 그대로 드러나는 순간 추해진다.** 소개팅에서 너무 이성 만나고 싶어하거나 결혼하고 싶은 욕구를 밝히면 안되듯이. 그것은 솔직한게 아니라 노골적인거고, 그걸 보는 사람은 자신이 수단이 된 듯한 느낌을 받는다.
약간의 변명을 하자면, 작가는 출판으로 돈 만지기가 힘들다. 품이 너무 많이 들어간다. 품 대비 돈을 더 벌거면 차라리 전자책으로 만들어 크몽에 올리거나 1인 출판을 한다. 아니면 인스타에 카드 뉴스 만들면서 "팔로우 하고 댓글에 옵시디언이라 남기면 DM으로 무료 전자책을 보내드려요!" 하면서 퍼널을 만들던지.
출판사랑 협업하여 낸 책은 사실 저자가 돈벌려기 보다는 자기를 알아주세요! 하는 브랜딩 목적이 강하다. 실용서 인세는 8~12%라고 알려졌는데, 책 한 번 안 써본 시안의 인세가 얼마로 책정되었을까? 그리고 실용서는 얼마나 팔릴까? 우리 나라에서는 책이 잘 안 팔린다. 결국 글쓴이의 집필 목적은 컨텐츠를 짜임새 있게 만들며 폭주 안 하고 피드백을 들으며 대중에게 접근하려는거다. 그러니 자기책 홍보한다고 욕을 할거면 돈벌레라기보다는 차라리 관종이라 욕하는게 맞다.
![[2024-06-01 at
[email protected]|돈은 1년에 2번 정산하여 받습니다]]
## 분량에 대한 트라우마
카이스트에서 영어로 석사 논문 썼던 것보다 이번 책 집필이 더 힘들었던 것 같다. 왜냐면, 논문의 내용 구성은 논리적이다. 그리고 어느정도 틀이 잡혀있다. 하지만 책은 그렇지 않다. 어쩌면 매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졸업이라는 절대 평가와 시장이라는 상대 평가를 비교하면 상대가 안 되는 난이도인것 같다.
석사 논문 때는 분량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었다. 이상하게 쓸 건 다 쓴 거 같은데 분량이 부족해보이는 느낌이다. 실제로 석사 논문이 짧다는 피드백을 들었다. 나는 할 말을 다 한 거 같은데... 분량 걱정은 집필 도중에도 일어났지만 이번에 책을 쓰면서 해소할 수 있었다. 나도 긴 글 쓸 수 있는 사람이구나.
![[2024-06-01 at
[email protected]|옵시 책보다 이런거 쓰는게 훨씬 쉽다.]]
## 책을 집필한다는 것
기회가 된다면 책을 집필해보는 것은 좋은 것 같다. 그것도 회사를 다니는 상황에서 말이다. 부가적인 수입이나 브랜딩을 떠나서 새로운 세계를 알 수 있고 새로운 상황에서의 자신의 모습도 볼 수 있다. **장기간에 걸쳐서 한 주제에 대해 10만자 이상을 써보는 것은 쉽게 가져볼 수 없는 기회다.** 이번 집필로 나는 많은 경험을 했다. 메일레터 작성, 팀 병합, 기면증 치료, 옵시콘, AC2 참가 등 정말 다양한 이벤트를 겪으면서 말이다. 이번 8개월은 나에게 가장 바쁜 8개월이었으며, 다양한 방면으로 나를 성장시킬 수 있었다.
레벨업을 그간 쭉 해왔으니, 다시 한 번 활동을 개시해보려고 한다.
![[2024-06-01 at
[email protected]|잘 팔리길 기원합니다 (적자만 안 나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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