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결정과 포지션

한 달에 한 번씩, 유료 구독 전용 메일을 보내드리기로 했습니다. 오늘 것은 1월의 유료 메일이고요. 1월 27일에 있을 옵시콘에서 제가 키노트 스피치에서 말할 주요 내용이기도 합니다.

지식 노동자의 성과에 있어서 가장 크게 영향을 미치는 것은 포지션이라 봅니다. 문제 해결 능력, 지적 수준 이런 것도 중요하지만 부차적이라고 봐요. 입시 순으로 세상에 임팩트 내는 순위가 정해지는 것은 아니잖아요. 좋은 머리로 퍼즐 게임만 하고 있으면 세상에 아무 영향도 없을 거고요. 물리학 고수라도 북한에 태어나면 이미 강대국들이 연구를 다 해놓은 핵개발을 하고 있을 겁니다. (학자로서 지식의 최전선에 있지 못한 거죠. 세상에 임팩트는 있긴 하겠네요;)

여기서 말하는 포지션이란 '선택'에 영향을 미치는 '공간, 위치'적인 요소를 말합니다. 예컨대, 대표적으로 다음이 있겠습니다.

  • 포커의 판돈: 판돈이 적을수록 상대 블러핑을 확인 못 하고 불리한 선택을 강요 당합니다
  • FPS 게임의 포지션: 저지대, 좁은 위치에 뭉쳐 있을 경우 적의 화력을 일방적으로 당해줄 수밖에 없습니다. 오버워치같은 게임을 많이 해보신 분이라면 알 겁니다.
  • 사회, 경제적인 위치: 극단적으로 왕족, 재벌 이런 부류가 아닌 이상 더 높은 사회, 경제적인 위치는 더 많은 선택지를 제공합니다. 잘 살 수록 어려운 생활을 '체험'삼아서 할 순 있겠지만 그 반대는 불가능하죠.
  • 부모, 집안 환경: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습니까?

포지션은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칩니다. 그리고 의사결정은 포지션에 영향을 미칩니다. 둘은 서로 맞물려 스노우볼로 굴러가며 우리를 미지의 운명으로 데려갑니다. 삶이 새옹지마라지만 어찌되었든 좋은 포지션과 의사결정은 더 원하는 운명을 맞이하는데 도움이 될 겁니다. 그러니 여기서는 ‘포지션에 대한 의사결정’과 ‘의사결정에 대한 포지션’을 다뤄볼 겁니다.

포지션에 대한 의사결정

의사 결정 중 가장 중요한 것은 포지션에 대한 의사 결정입니다. 포지션이 좋은 사람은 좋은 선택을 할 확률이 높습니다. 실수를 해도 금방 복구할 수도 있고요.

아마존을 세운 제프 베조스도 똑똑한 학생이었지만, 자신의 역량 수준을 깨닫고 이론 물리학자가 되는 것을 포기했다고 합니다. 모르기는 하는 거지만 그대로 이론 물리학자가 되었더라면 아마존을 세운 것보다 더 큰 임팩트를 내기는 어려웠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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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서 포지션에 대한 의사 결정이 최초로 다량으로 목격되는 경우는 중학교에서 고등학교로 넘어가는 시기입니다. 대표적으로 "나는 공부가 맞지 않아." 라면서 실업계로 가는 친구들입니다. 이 친구들의 성적이 하위권이라고 해도 애매한 중위권인 친구들보다는 더 나은 의사결정을 한 거라 생각합니다.

포지션 의사결정에 재밌는 점은 지금 포지션을 알아차리기가 어렵다는 겁니다. 위와 같이 순위가 찍히는 공부와 입시의 경우 어느정도 객관화가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입시는 모의고사만 치면 전국에서 몇 등인지 객관화가 되니깐요.

그런데, 대학교에 들어가는 순간 얘기가 달라집니다. 주제 파악이 어려워지는 건 1학년 1학기 미팅 때부터 시작됩니다. 연애 시장에서 자기 수준을 파악 못하는 거죠. 그렇기에 매력은 없는데 눈은 높아서 뒤에서 꼴불견 소리를 들을 수도 있고요, 자존감이 낮아 연애 시장에서 경쟁력이 있는데도 똥차만 골라 사귀던가 하는 일이 일어납니다. 이와 비슷한 스토리는 경쟁이 존재하고 수요와 공급이 있는 취업 시장까지도 이어집니다. 취업을 한다하더라도 이직을 할지 남을지, 혹은 창업을 할 지 고민은 끝없이 이어지게 됩니다. "나는 과연 어느정도인가?" 라는 고민이요.

포지션 의사결정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피드백입니다. 내 위치를 끊임없이 확인하고 지금이 괜찮은지 확인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다양한 변화에 나를 노출시켜 볼 필요도 있습니다. 그래야 현재 위치가 괜찮은지 더 알맞은 곳은 없는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 유리한 싸움터를 찾아야 하는 거죠.

별로 환영받지 못할 의견이지만, 저는 한국의 비교 문화가 나라를 이만큼 만들어내는데 도움이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물론 성장의 끝물인 지금에 와서야 많은 부작용이 언급되지만, 그래도 서로 간 끊임없는 비교를 통한 피드백을 통해서 발전한 게 아닐까 싶어요. "내 친구들은 이 정도 하는데 왜 나는 못 하지?", "이 나이에 이 정도는 해야 하는데."라는 생각이 조금 더 성과를 내는데 도움을 줬다고는 생각합니다. (개인의 행복이랑은 별개로요)

외부의 피드백이 없는 불확실한 상황에서 포지션에 대해 의사결정을 할 필요도 있을 겁니다. 앞선 포지션들과는 다르게 줄 세우기가 불가능한 것들을 말합니다. 대표적으로 창업이죠. 이 경우 내면으로부터 스스로 피드백을 받아야 합니다. 이 경우, 기록하는 습관이 도움될 거라 생각합니다. 내가 무엇을 했는지 어떤 점에 강점이 있었는지 무엇을 정말 원했는지를 적고 참고해야 나중에 일을 저지르더라도 확신을 갖고 뛰어들 수 있을 겁니다.

의사결정에 대한 포지션

의사 결정에 있어서 포지션을 제대로 잡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의사 결정을 내릴 여유를 확보해야하죠. 그런데 수많은 요소가 우리의 포지션을 갉아먹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선택지도 줄어들게 되죠. 그런데 이 요소들은 우리가 알아차리지 못하게 선택지를 갉아먹습니다.

그렇기에 어떤 것들이 우리의 포지션을 갉아먹는지 알아차림이 필요합니다. 감정, 자아, 관성이 우리의 의사결정을 잡아 먹습니다. 

감정이 격해지면 시야가 좁아집니다. 그래서 되돌릴 수 없는 말을 저지르기도 합니다. 특히 롤이나 오버워치같은 경쟁 게임을 하면 자주 보입니다. 서로 감정이 격해져서 공동의 목표인 승리는 물 건너 간 상황이 자주 발생하죠.

자아가 의사결정에 개입하면 좋은 선택지가 많이 줄어듭니다. "내가 이 정도인데 겨우 이것밖에 못 받아? 겨우 이런거나 시켜?" 라는 식으로 어떻게 하면 더 나아지는 건설적인 선택지보다는 자존심을 채우려드는 단기적인 선택지에 빠져들 겁니다.

관성이 의사결정에 개입하면 주어진 포지션에서 벗어나는 것이 어려워집니다. 그냥 사는대로 생각하게 되죠. 운이 좋다면 원하는 곳에 도달할 수도 있겠지만 유혹이 넘쳐나는 복잡한 세상에선 어려울 겁니다.

감정, 자아, 관성이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것에서 벗어나려면 한 템포 벗어나는 것이 중요합니다. 저는 여기에 기록과 호흡이 활용될 수 있다고 봅니다. 기록과 호흡을 통해 감정, 자아, 관성에서 벗어나 의사결정을 위한 포지션을 잡는 겁니다.

어떤 의사결정을 내리기 전에 그 의사결정을 내린 이유를 작성하면 감정, 자아, 관성에 벗어나서 조금 더 객관적으로 상황을 볼 수 있게 할 겁니다. 주식에서도 매매일지를 작성하는 것이 뇌동매매하는 것을 방지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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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의도적으로 호흡에 집중하는 것도 한 템포를 늦춰서 더 나은 의사결정에 도움이 됩니다. 왜 호흡이냐 하면, 대부분 자기 계발 통해서 호흡에 집중하는 명상을 경험하셨을 거라 봅니다. 그렇기에, 평상시의 의사결정에도 의도적인 호흡을 도입하면 지금 하는 생각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데 도움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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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다른 레터에서 말씀 드렸듯이, 정보의 소스도 중요합니다.

푸틴이 우크라이나 전쟁을 일으키고 생각보다 일이 잘 안 풀렸습니다. 푸틴도 전 세계도 며칠만에 우크라이나에게서 항복을 받을 수 있을거라 생각했지만 그렇지 않았습니다. 이에 푸틴이 치매라서 의사결정 능력이 떨어졌다라는 얘기도 나왔습니다. 그런데 또 다른 재밌는 얘기는 푸틴은 올바른 의사결정을 내렸지만 주변에 예스맨밖에 남지 않아서 왜곡된 정보가 들어왔을 거란 애기입니다.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해 부정적인 정보를 올린 인사들은 다 좌천되었다라는 거죠. 십상시란 표현을 뉴스에서 자주 볼 수 있지 않습니까? 더 중요한 위치로 갈 수록 우리의 눈을 가리는 것들이 많아질 겁니다. 게임의 난이도가 더 높아지는 것이죠.

이처럼 우리에게 들어오는 정보들이 유효한지, 내가 제대로 된 정보를 받아들이는지 경쟁자들에게도 이 정보가 주어지면 어떻게 가치가 변하는지 잘 판단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렇게 한 번 꼬아 생각하는 것도, 기록과 호흡을 통해서 한 템포 늦추는 것이 도움이 된다고 봅니다.

오늘 레터는 Shane Parrish의 Clear Thinking에 많은 영향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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